[회원기고]드라마읽기/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촉법소년을 생각해보는 드라마, ‘히든’ – 조덕상 회원

2020년 1월 10일 minbyun 213

드라마 읽기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촉법소년을 생각해보는 드라마, ‘히든’

안녕하세요.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조덕상 변호사입니다. 제가 몸담은 아동위의 소년사법 TF에서는 현행 소년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아동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30일 소년사법 TF에서는 촉법소년 문제를 다뤄 화제가 된 KBS 드라마 스페셜 ‘히든’을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1). 그 날 드라마를 함께 보고 나서 생각해본 이야기를 여기에 찬찬히 풀어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이 소년과 소년법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히든’은 1시간짜리 단편 드라마입니다. 약간의 내용누설이 있는 리뷰라는 걸 미리 양해 부탁드려요. 여성청소년과 소속 한주경 형사(류현경)는 존경하던 선배를 미성년자의 우발적인 장난으로 잃은 과거가 있는 인물입니다. 순찰 중 우연히 학교 친구 선주(오연아)의 아들 김건(서동현)이 선주를 폭행하고 가출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선주는 주경에게 건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선주는 중학교 2학년인 건의 방황을 사춘기 탓으로 둘러대지만, 주경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건의 책상에서 어둡고 섬뜩한 그림 노트를 발견하고, 학교에서도 건이 친구들의 돈과 물건을 빼앗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주경은 사건을 조사하는 중 건이 초등학생 시절 친구였던 이용현(유재상)과 함께 건물 옥상에서 돌을 던져 사람을 죽인(주경의 선배가 사망한 것과는 별개의 사건)소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 주경이 건을 추적하면서 건에게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 드라마의 흐름입니다.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2015년 10월 8일에 실제로 발생한 용인의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을 중요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그 사건의 당사자인 두 소년 중 1명은 10세 미만이라 기소되지 않았고, 11세였던 1명은 소년부로 송치되었습니다2). 그 외에 드라마 제작진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이 별다른 처벌 없이 사회로 복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범법, 촉법소년이라는 사법 시스템의 허점과 양면성을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드라마는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과 만 10-13세의 촉법소년의 정의를 까만 화면으로 보여주며 시작되고, 만 13세인 김건이 촉법소년에서 소년으로 넘어가는 시각을 계속 보여줍니다. 다른 범죄 드라마가 범죄의 공소시효 만료일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약간의 긴장감을 주지요.

모종의 사건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는 경찰이 우연히 유사한 사건에 집착하며 범죄의 진실을 찾는다는 구성은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틀입니다. 주경은 존경하던 선배의 죽음으로 소년에 대한 강한 분노를 담고 있는 인물이지만 사건을 조사하면서 ‘깊게 들여다봐. 한 사람의 인생이니까.’ 와 같은 선배의 유훈을 떠올리며 변화를 겪지요. 범죄 드라마나 추리 어드벤처 게임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익숙하면서 식상할 수도 있는 구성이고, 조금 촉이 좋은 분들은 드라마 초반에 이미 드라마의 대체적인 결말을 예측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과 편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동이라는 메시지는 표현이 다소 거친 감이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옵니다. 건의 부모는 우발적인 그 행위로 인해 충격을 받은 건에게 필요한 관심과 위로 대신 자신들의 사회적 체면과 지위를 위해 건의 존재와 행위를 학교와 사회에 감추는 데에 급급합니다. 그 과정에서 건이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반성할 기회는 박탈되었고, 그 상처를 온전히 받아줄 수 없는 건이 일탈 행위를 하자 그는 부모에게 ‘괴물’로 불리는 존재가 됩니다. 선주는 건을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지만 주경은 선주에게 너를 위해서였다고 일갈하지요.

사전 지식 없이 본다면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괜찮은 단막극이라고 평할 수 있겠지만 변호사의 눈으로 드라마를 깊게 들여다보면 제도의 실상에 대한 고증이 여러 가지로 아쉬운 작품입니다. 우선 드라마의 시작 화면에 등장하는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이라는 용어는 실무상 정립되지 않은 용어로, 「소년법」 제4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범죄를 범한 소년’이라는 표현에서 임의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일반적으로 ‘범죄소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또한 드라마가 처음에 언급하는 것처럼 10세 미만의 소년은 형벌과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고, 10-13세의 소년은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맞지만 잘 아시다시피 위 보호처분에는 성인의 징역형과 유사한 단기 또는 장기의 소년원 송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촉법소년은 범죄의 경중 등에 따라 수사를 받고 그 결과로 자유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데도, 드라마는 촉법소년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집중하여 건이 촉법소년에서 벗어나기 전에 범죄를 저지르고 책임을 면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물론 결말은 조금 다르지만요. 우리의 실상은 촉법소년은 물론이고, 법 위반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럴 우려가 있다는 우범소년도 국가가 구금까지 시킬 수 있습니다. 드라마제작진은 이러한 사실도 알고 있었을까요.

건이 친구와 저지른 과실치사 행위는 형사처벌이나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민사 손해배상의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춘 건의 부모(부는 법학과 교수, 모는 화가)가 사건의 진상을 적당히 덮었다는 정황만 언급될 뿐 피해자의 유족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제작진이 형사처벌의 부분에만 집중한 나머지 민사 책임에 대한 고찰은 부족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고,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사회적 취약 계층이다보니 민사책임을 정당하게 추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습니다. 피해자의 유족은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얼마 후 건의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소리와, 몇 년 뒤에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장면에서만 잠깐 등장합니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건과 용현이 범법소년이었을 때 조사받은 내용이 경찰서의 전과 기록에 남아 있어 주경이 건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되는데, 실무상 범법소년의 수사 및 범죄 기록은 경찰에 남지 않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가볍지 않은 옥의 티로 보입니다.

건이 저지른 잘못은 부모의 무책임, 소년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증오와 결합하여 두 주인공이 형사와 범인으로 재회하는 클라이막스로 발전하게 되고, 그 결말은 의외로 조금 허망하게 정리됩니다. 단막극이라는 작은 틀 안에서 죄를 저지르면 누구든지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충실한 까닭이겠지요. 우리 모임은 이 드라마가 소년사법 제도에 질문을 던지는 방향이 과연 타당한지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건과 그 주변인물들이 고통받게 된 것이 과연 건이 합당한 형벌을 받지 않아서였을까요. 건이 과실치사 행위에 대해 어른과 마찬가지로 형벌을 받았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다소 놓친 것 같은, 그리고 우리 모임이 이야기를 나누며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국가는 소년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위해 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였습니다. 사실 저 질문에서 ‘소년’이라는 단어를 빼고 물어봐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소년의 잔혹한 범죄와 소년법에 따른 결정 뿐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소년과 피해자 본인 및 가족들이 겪는 아픔에 대해 알지 못하며, 국가는 그에 대해 책임 있는 보호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원망과 고통에 집중해 가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곧 엄중한 처벌이라고 이야기하며, 현 정부는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려고 하고, 소년원이 부족하니 민영소년원을 지으려고 하고, 20대 국회에서는 소년법을 아예 없애거나 소년에 대한 중형 선고를 가능하게 하는 온갖 개정안이 난무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의 언행이 우리가 아동인권의 준거규범으로 삼고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정부와 언론이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게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지 말 것, 소년법상 우범 규정을 삭제할 것, 소년의 자유 박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이버전 제도를 활용할 것 등을 권고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사회의 서슬퍼런 여론과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우리 모임은 소년의 사회 복귀를 돕는 합당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소년과 피해자 및 그 식구들의 피해를 회복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모두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양자에 대한 국가의 노력이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소년에 대한 처벌이라도 강하게 해야 된다는 여론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건과 그 주변인들이 건의 행위로 인해 모두 고통스러워할 때 국가는 그저 형사처벌을 담당하는 경찰의 모습으로만 등장할 뿐 다른 곳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는 형벌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게는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 곳곳에서 문을 두드리는 등장인물들의 호소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된 성남 소재 어린이집에서의 성추행 사건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가해 아동의 부모와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피해 아동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언행을 했다가 피해 아동의 가족들과 사회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었죠. 이 사건과 이 드라마를 보더라도 소년 범죄 문제의 책임을 오롯이 국가에게만 물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년 범죄를 둘러싼 사회적인 오해를 걷어내고 소년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각각 필요한 조치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국가에게 소년에 대한 엄벌이 아닌 소년과 피해자를 모두 보듬어 달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드라마는 촉법소년으로 대표되는 소년사법 문제에 대해 흥미롭지만 다소 아쉬운 답을 내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매체가 관심이 없었던 소년의 고통에 대해 주목했다는 점만으로도 한 번쯤 볼만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소년사법 문제 외에도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우리 모임은 드라마 속 건에게 쏟아지는 악플을 보며 개인의 언행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는 사라지고 개인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만 남는 세태를 읽을 수 있었고, 노키즈존과 같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사회적 차별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어디선가 비난을 받겠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를 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이런 시도를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현재 소년사법 TF는 우리의 소년법을 소년과 피해자의 인권을 두텁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24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1대 국회와 정부에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소년법 개정안을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1) ‘KBS 드라마 스페셜 2019’ 사이트에 가시면 회원가입 없이 무료로 시청 가능. 드라마 리뷰는 한겨레 2019. 12. 13. 자 기사 ‘논쟁적 소년법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참고.

2) http://m.nocutnews.co.kr/news/4503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