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변론센터][취재요청]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

2019년 4월 3일 minbyun 177

[취재요청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

 

 

■ 민주사회를 향한 귀 언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019. 4. 4.(수) 11:00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 소송 제기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05년이었습니다. 이후 재상고심에 해당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소제기로부터 무려 13년 후인 2018년에야 선고되었습니다.

 

– 위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요지는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대한민국은 이 사건 당사자 및 분쟁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는 점,

둘째, 일부 당사자들에 대한 일본 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승인할 수 없고,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

셋째, 구 일본제철과 신일철주금이 실질적으로 동일하기에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볼 수 있다는 점,

넷째,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1965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다섯째,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되어 허용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하여 앞서 살펴본 법리적 쟁점들이 정리되었는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정당성은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다시금 확인되었습니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직후인 2018. 12.,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을 대리하고자 “강제동원소송대리인단”을 구성(민변 소속 변호사 12명, 이하 ‘대리인단’이라 합니다)하였습니다. 위 대리인단과 민족문제연구소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사회는, 지난 2019. 1. 25.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설명회를 개최한 이래 두 달여에 걸쳐 200명이 넘는 강제동원 피해자 및 그 유족들과 상담하면서 추가 소송을 준비해 왔습니다.

 

■ 일제강점기 시대 이 땅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던 강제동원은 인권의 관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그 어떤 주체도,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는 현실은 여전합니다. 심지어 일본제철을 포함한 가해 기업들은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사법부를 통해 확인된 손해배상채무의 임의 변제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 오늘 이 자리에 소송 당사자로서 직접 나오신 김한수 할아버님은 올해로 102세입니다. 광복 74주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중 다수는 가해자로부터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도 함께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부분적 피해 회복을 위해서라도 대리인단은 더 이상 이 사건의 소 제기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추가 소송의 제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추가 소송은 이미 준비가 완료된 강제동원 피해자들부터, 오늘을 시작으로 계속 제기할 예정입니다.

 

■ 오늘 일제히 소송을 제기하는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총 8건)의 원고들은 총 31명입니다. 이 중 4명은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이며, 27명은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의 유족입니다.

 

– 오늘 소송을 제기하는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 중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두 분의 내력(來歷)은 아래 표 기재와 같습니다.

 

김한수 金漢洙 / 191812월 생 /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출신.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어떻게든 동원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시던 중 전매청에 다니면 징용당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군 전매지국에 취직. 1944년 8월 경, 전매청에서 필요한 목재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회사트럭을 타고 연안읍에 갔다가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하고 집결해 있는 청년 200여명과 함께 징용 당함.

․부산,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도착, 7일간 군사훈련을 받고 사이와이 숙소[幸寮]에 배치, 이후에 후쿠다 숙소[福田寮]로 이동. 열악한 식사와 생활환경, 강압적인 규율을 받으며 생활.

․작업장에서 선박에 사용하는 대형철판을 구부리다가 체인이 끊어지면서 왼쪽 엄지발가락을 다치는 사고를 당함.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주사만 맞았고, 병가를 받지 못해 발가락이 계란만큼 부은 상태로 다음날에도 출근하여 계속 일 할 수 밖에 없었음.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 당시 폭심지에서 3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피폭 당했지만 공장의 대형철문 밑에 깔려 목에 부상을 입고, 목숨을 건짐. 1945년 10월 20일 경, 동료들과 함께 소형 목선을 구해타고 귀국.

 

김용화 金龍化 / 192912월 생 / 후쿠오카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 소작농 집안으로 가난한 생활환경에서 7남매 중 막내로 성장. 형님과 누님들이 모두 출가했고, 집안도 가난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음. 국민학교 졸업 즈음 마을에서 일본제철에서 공원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돈 벌러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음. 당시에 함께 간 사람들 중에는 어린 편이었지만 같은 나이 또래의 청년들이 더러 있었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못 가게 하지 않았음.

․동원 당시에는 전주기차역에 수 십 명이 모여서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이동. 기차역에서 아버지의 서글픈 표정이 잊히지 않음. 여수까지 기차로 이동하여 여수항에서 후쿠오카로 이동, 100여명이 함께 지내는 숙소에 배치되어 단체생활을 했고, 숙소에서 3~4km 떨어져 있는 공장까지 기차로 출퇴근함. 처음에는 여러 작업장에 다니면서 공장에서 필요한 막노동, 잡일을 했는데 1년 정도 후 지렛대로 물건을 들어 올리다가 지렛대가 튕기면서 앞니가 부러짐. 이후 어려 작업장의 사무실을 다니며 청소,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는 급사 일을 함.

․해방 후, 회사에서 대형선박을 마련하여 야하타 항구에서 숙소 사람들 모두 함께 타고 귀국함.

 

 

■ 이번 추가소송의 피고로, 기존의 일본제철 주식회사(구 신일철주금 주식회사)‧ 주식회사 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이외에, 일본코크스공업주식회사(日本コークス工業株式会社)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기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다른 강제동원 가해 일본 회사들에 대하여도 현재 추가 소송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 일본코크스공업주식회사는 구 미쓰이광산주식회사가 2007년 사명(社名)을 변경한 회사입니다. 미쓰이광산은 일제강점기 일본 최대의 탄광인 미이케탄광을 운영하면서, 조선인들을 강제연행하고 노동을 강제하였습니다. 추가 소송 원고의 부친인 피해자 亡 박◦◦은 1943. 9. 21.부터 일본 후쿠오카현 소재 미쓰이 미이케 광업소 만다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강요당하였고, 1945. 10. 4.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위 피해자의 유족들은 2006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진상규명위원회에서 구체적 증거를 통해 위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 추가 소송을 통해 미쓰이광산의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하고, 미쓰이광산을 실질적으로 승계한 일본코크스공업주식회사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묻고자 합니다.

 

■ 대리인단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뿐만 아니라, 일본 가해 기업의 대상을 확대하면서 지속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대리인단은 일본 가해 기업들에게 조속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나아가 일제강점기 시대 광범위하게 자행된 강제노동에 대하여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공식적인 사과와 자발적인 피해보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에게 대법원 판결과 후속 소송 상황을 고지함으로써 강제동원 피해자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끝.

 

 

2019.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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