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2018 영국 런던 트러스트 컨퍼런스 참가 후기- 여성인권과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초국가적 연대

2018년 12월 17일 minbyun 207

2018 영국 런던 트러스트 컨퍼런스 참가 후기:

여성인권과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초국가적 연대

장보람

 

1. 트러스트 컨퍼런스와 트러스트 스칼러

‘트러스트 컨퍼런스(Trust Conference): 인권옹호를 위한 법치(Putting the Rule of Law Behind Human Rights)’는 톰슨 로이터 재단(Thomson Reuters Foundation)이 매년 영국 런던에서 주최하는 인신매매 방지, 여성 권익 강화 및 인권옹호를 위한 포럼입니다. 글로벌 기업, 법률가, 국제기구, 정부 관계자, 인권 활동가 등 약 600여명이 함께 모여 초국가 범죄인 인신매매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공유하고 해결을 위한 초국가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인 셈입니다. 이 연례 행사는 2012년 트러스트 우먼(Trust Women)으로 시작되어 더욱 광범위한 인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2017년부터 트러스트 컨퍼런스로 바뀌어 개최되고 있습니다.

(2018  트러스트 컨퍼런스 개최장소인 엘리자베스II 센터)

올해 역시 트러스트 컨퍼런스가 11월 14일 (수) – 11월 15일 (목) 양일간 런던에서 열렸습니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컨퍼런스는 매년 인신매매 방지 및 인권옹호 영역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트러스트 스칼러(Trust Scholars)로 선정하여 참석 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항상 국제인권 관련 유익한 교육 , 펀딩 및 네트워크 정보 공유를 활발히 해주시는 황필규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저도 이번에 스칼러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2018 트러스트 스칼러들)

스칼러들을 위한 환영만찬이 컨퍼런스 전날 저녁에 있었는데, 세계 곳곳에서 참석한 활동가들의 ‘너는 어떤 단체를 만들었니?’라는 질문이 너무나 자연스러울 정도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넘치는 여성인권, 인신매매 퇴치 분야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던 자리였습니다. 제가 속한 그룹의 Abhinav Khanal라는 스칼러는 미국 대학 재학 중 만난 한국인 사업파트너와 코스타리카에서 ‘Bean Voyage’라는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커피원두 생산에 주로 종사하는 코스타리카 현지 여성들에게 시장 접근성 훈련을 제공하고, 이들의 수입수준을 높여,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기업입니다. Bean Voyage의 법률자문을 톰슨 로이터 재단 산하의 프로보노 프로그램인 TrustLaw가 맡아서 하고 있다고 합니다.

(Bean Voyage를 소개하는  Abhinav Khanal)

(스칼러들을 위해 매일 아침 열렸던 네트워킹 프로그램)

2. 프로그램

이틀 간의 프로그램은 ‘현대판 노예제도 철폐’, ‘인권옹호’의 큰 주제 아래 인신매매 거점지로서의 보육원, 강제노동 철폐를 위한 기업의 혁신, 해결을 위한 액션플랜: 전세계 금융기관의 연대, ‘노예가 없는’ 기업 공급사슬망: 특별한 셀링 포인트, 이주와 현대판 노예제도, 여성폭력예방, 여성의 토지재산권 등의 세부 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노예가 없는’ 기업 공급사슬망: 특별한 셀링 포인트 세션에서 소개된 두 회사, Tony’s Chocolonely(초콜렛), Outland Denim(청바지)의 대표들이 나와 상품을 직접 소개하는 시간이 흥미로웠습니다. 대표들은 기업들이 어떻게 공급사슬망에서 ‘노예’로 일하는 노동자나 인신매매의 피해를 입는 이해관계자들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두 기업 모두 이러한 노력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인권존중 기업경영이 ‘New Normal’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도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지역에 수많은 하청공장을 두고 있는데, 공장 문을 닫고 야반도주, 임금체불 등 현지 노동자들의 인권침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언제쯤 인권존중 경영이 한국기업에게도 ‘New Normal’이 될 수 있을까요?

3. 트러스트 컨퍼런스 액션

컨퍼런스 기간 중 가장 놀라웠던 세션은 바로 ‘Trust Conference Action’이었습니다. 이틀 간 일정의 마지막에 열린 두 번의 세션인데, 여성권익 향상과 인신매매 퇴치를 위해 일하는 단체의 리더들이 나와 단체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시설로 유입되는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활동을 하는 Lumos, 인도 뭄바이 홍등가에서 자라난 여아들의 심리 및 교육 지원을 하는 Kranti 등 총 7개의 단체가 나와 활동을 소개하고, 교육 커리큘럼, 법률자문, 안정적인 활동 공간을 위한 자금 등 지금 각 단체가 필요한 것들을 활동소개 마지막에 공개합니다. 단체 대표들의 스토리를 들은 참가자들은 즉석에서 바로 손을 들고 제공 가능한 자원을 그 자리에서 약속합니다.

예를 들어, Lumos의 경우, 무료 법률자문과 시설 중심 아동 보호에서 가족, 커뮤니티 중심의 보호로 전환하기 위해 일하는 돌봄 혁신가들과 기업과의 연결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기업 UBS 재단 관계자가 손을 들고, 현장에서 ‘Lumos 활동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며, 20억(USD 2 Million)을 지원하겠다’라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교육 커리큘럼의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위한 기술, 본인들이 개발한 아동을 위한 동화책 설명 프레임,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본국의 시민사회에 열심히 알리겠으니 앞으로 계속 네트워킹 하자는 약속 등 다양한 연대의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상품으로 옥션을 진행하는 모습은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연대의 약속’으로 옥션 아닌 옥션을 진행하는 기획에 저도 감동 받았고, 어떻게든 한국 인권단체들도 멀지 않은 미래에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 연대를 약속하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 우리나라 인신매매 관련 의제 

저는 민변에서 상근으로 일하기 전,  인신매매 연구 담당관으로 일하던 경험으로 바탕으로 이 컨퍼런스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현대판 노예제도인 인신매매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신매매는 사람의 ‘이동’과 관련된 범죄인만큼 특히 이주민들이 성착취, 노동착취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연예흥행비자(E-6-2)를 가지고 한국에 입국하는 대부분의 필리핀 여성들은 현지 송출업체로부터 일자리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입국하여 비자 본래의 목적인 가수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업주의 강제/위력에 의한 성매매의 피해자가 됩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 여성들을 피해자로 식별하지 않고, 불법 성매매로 처벌하고, 강제출국 시키는 일이 빈번합니다. 또한 대한민국 연근해나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들 역시, 경제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서 고용계약서, 근로환경 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길게는 1년 동안 육지를 밟지 못한 채 바다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됩니다.

인신매매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국제규범 중 하나인  ‘유엔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를 우리나라는 2015년에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형법 상의 인신매매 정의는 협소하고, 피해자의 보호과 지원, 범죄의 예방에 관한 포괄적 인신매매 방지법은 부재한 상황입니다.

올해 12월의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뿐 아니라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지속적으로 한국의 포괄적 인신매매 방지법 제정 및 피해자 식별과 보호에 국가적 노력을 강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습니다.

5. 2019년 트러스트 컨퍼런스를 기대하며

컨퍼런스에 처음 참석해 본 것이라 모든 것이 흥미롭고 감동적이었지만,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2016년부터 컨퍼런스에서는 ‘Stop Slavery Award’를 기업에도 수여하는데 올해에는 애플과 유니레버가 수상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00% 동의할 수 있는 수상은 아니었지만 다른 스칼러들과 함께 앞으로 기업이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니겠냐며 씁쓸하게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또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참가자들 대부분이 유럽, 미국, 아프리카 및 소수의 서아시아 지역 출신이었고, 컨퍼런스에서 다루어졌던 이슈 역시 위 지역 중심이었습니다.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 여성인권과 인신매매 현황에 대한 공유는 거의 없었고, 저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참가자 역시 극소수였습니다.

반가운 만남도 있었습니다. 2015년 한국의 E-6-2 정책대안 네트워크의 일본 현지 인신매매 비교 조사를 도와주었던 일본 여성 변호사님 한분을 만나 앞으로 아시아 지역 이슈를 활발히 알릴 것을 함께 다짐하였습니다. 대중의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신매매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끈질기게 법과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동료들이 필요합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민변회원들과 함께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