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대법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진정한 사법개혁이 아니다

2018년 12월 14일 minbyun 221

 

[논평] 대법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진정한 사법개혁이 아니다

1. 대법원은 2018. 12. 12. 법원조직법 개정안(이하 ‘대법원안’이라 함)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 대법원안은 중요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심의·의사결정기구로 사법행정회의 설치, 법원행정처 폐지 및 법원사무처 신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 대법원안은 시대가 요구하는 사법행정개혁의 정도에 비추어 대단히 미진하다.

2.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사법의 독립을 스스로 훼손하고, 사법부(府)가 아닌 사법부(部)의 길을 택했다. 사법농단 사태를 가능하게 한 과거의 사법행정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구이고, 그 핵심은 대법원장이 가진 제왕적 권한의 분산과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온 법원행정처의 실질적 폐지이다. 그러나 공개된 대법원안에 따르면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은 형식에 머물렀고, 법원행정처는 법원사무처로 사실상 개명한 것에 불과하며, 개혁의 핵심은 누락되어 있는바, 구체적으로 그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법원안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였다. 대법원은 사법행정회의의 권한과 관련하여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하 ‘추진단’이라 함)이 다수의견으로 제안한 ‘총괄기구안’을 뒤집고 심의·의결 기능만을 부여했다. 총괄권 없는 사법행정회의는 스스로 결정한 것을 관철하지도 못하고, 집행단계에서 왜곡되어도 직접 시정할 수 없다. 결국 대법원장의 의사를 보좌하는 기구 이상이 되기 어렵다.

둘째, 상근 집행기관인 법원사무처장을 사법행정회의의 당연직 위원으로 구성함으로써 사법행정회의를 사실상 무력화하였다. 법원사무처장은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는 상근집행기관으로, 관료조직인 법원사무처 직원을 지휘한다. 이와 같은 법원사무처장을 당연직 위원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결국 의사결정기관인 사법행정회의에서도 대법원장의 의사가 관철되도록 하겠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특히 법원사무처장을 제외한 다른 위원들은 모두 비상근인 점, 사법부의 내부 사정에 밝고 정보가 집중되어 있는 사람은 법원사무처장일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법행정회의는 오히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하는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법행정회의의 비법관 위원이 소수(4명)이므로 대법원장의 독자적 의지를 견제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도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 사법행정회의 운영과 관련한 사항을 대법관회의가 정하도록 하여 사법행정회의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은 점, 사법행정회의 의사결정에서 실질적인 내용을 생산해 낼 산하 분야별 위원회의 운영도 모두 대법관회의에서 정하도록 한 점, 분야별 위원회를 법관 중심으로 구성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점, 사법행정회의의 권한을 축소·한정하여 사실상 독자적인 합의체 기구로서 기능할 수 없도록 한 점, 사법행정회의의 비법관위원은 법관 인사안 확정에도 참여할 수 없어 시민에 의한 견제가 불가능하도록 한 점도 사법행정회의가 결국은 대법원장 권한 사수와 법원에 의한 사법행정 독점의 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셋째,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인 법원행정조직의 탈판사화가 누락되었다. 대법원안은 현재 법원행정처에서 판사가 일하는 근거조항인 법원조직법 제71조 4항을 현행과 같이 유지시켰다. ‘왕당파’, ‘법원판 하나회’로 불렸던 법원행정처 판사들을 빼놓고 사법농단을 생각하기 어렵다. 이들은 법원 내 엘리트로 박근혜 정권의 법률대리인처럼 문서를 작성했고, 법관을 사찰했고, 재판에 개입했다. 행정처로의 발령을 ‘대법원장의 은혜’로 생각하고 ‘보은’해야 한다는 표현이 법원행정처의 기존 문법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법행정을 집행하는 기구에 법관을 남겨두고도 법원행정처를 폐지했다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법원장은 현 조항에 따라 단계적 비법관화를 실현하되 임기 중에는 반드시 완성할 것이라 언급하였으나, 단계적 비법관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있다면, 법으로 그 완성 시기를 못박고 부칙으로 유예기간을 설정하면 족하다. 그러나 법원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언제 비법관화를 완성할 것인지를 국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이미 약속을 깬 바가 있다. 이번 추진단안을 뒤집은 대법원안이 그 증거다. 그런 대법원장의 약속을 어떻게 믿겠는가.

3. 대법원안의 성안 과정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이하 ‘사발위’라 함)는 2018. 7. 17. 제6차 회의에서,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기구로 (가칭)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하여야 한다는 건의문을 다수의견으로 채택하였다. 나아가 사발위의 건의사항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구성된 추진단에서도 다수의견으로 사발위의 다수의견과 같이 사법행정회의의 총괄권한이 유효하다고 논의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같은 사법행정회의의 권한 범위에 대해 부정적일 것이 당연히 예상되는 ‘법원 가족들’에 대한 의견 수렴을 이유로 한 달의 시간을 흘려보냈고, 그 결과 사발위 및 추진단의 다수의견을 무력화하면서 사법행정회의의 권한을 심의·의결기구로 격하시킨 후 대법원안을 성안하여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사법개혁의 의지도, 능력도 부족함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4. 대법원안은 진정한 사법개혁안이 아니다. 문구를 몇 개 수선하는 정도로 개혁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안이 아니다. 국민은 법원을 기다려줬지만 법원은 그 기대를 스스로 내쳤다. 국회는 대법원안을 폐기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분권형 사법행정조직을 고민하여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이 미진한 개혁안을 대법원이 제시한 것에는, 그간의 사법개혁을 온전히 사법부에 맡겨 온 정부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정부는 법원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중심이 되는, 각계의 인사와 범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사법개혁기구를 조속히 구성하여야 한다.

5.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새롭게 구성된 사법개혁기구에서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사법행정 개혁의 핵심은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하고, 법원행정처를 완전히 폐지하고, 사법행정의 법원 독점을 깨는 것이어야 한다. 제2의 사법농단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그래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다. 조속히 범국민적 사법개혁기구를 구성하여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가장 우선과제로 하여 성안한 후 국회에서 입법화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다시 잰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2018. 12. 1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 호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