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회원 월례회 후기] ‘자백’을 보고

2016년 10월 5일 minbyun 330

[9월 회원 월례회 후기] ‘자백’을 보고

손준호 회원(법률사무소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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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 않으세요?”

“사과 한 마디만 하시죠”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희랑 상관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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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달/㈜엣나인 필름

있지도 않은 간첩을 만들어 조작했던 자들, 대한민국 최고 국가정보기관에서 책임자로 있던 자들의 뻔뻔함과 몰염치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던 영화. 자백.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당연히 민변을 통해서다. 민변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자백’의 단체 관람 메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휴먼 변호사들의 단톡창에 함께 보러가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막 인터넷에 ‘자백’을 검색해보고 보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바로 동참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관람신청을 하면서 2014년 가을 어느 날 만났던 유우성씨를 떠올렸다. 이미 민변 변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유우성씨는 어느 민변 모임 뒤풀이 자리에 밝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뒤늦게 소개를 받고서 그 유명한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증거조작사건의 피해자가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마음과 유우성씨에 대한 괜한 미안함에 위로의 말을 건네며 술을 많이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와 연락처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그 뒤로 만나지는 못했다. 이 후 그와 민변 회원과의 결혼소식을 듣고 다시 그를 떠올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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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달/㈜엣나인 필름

그렇게 보게 된 영화 ‘자백’. 영화는 누군가의 차가운 질문에 맥없이 담담하게 대답하는 한 여자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그것은 자백이었다. 여동생이 오빠를 간첩으로 모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그 후 한참 뒤에 촬영된 인터뷰 영상에 등장한 그 여동생은 그것이 국정원의 감금과 폭행, 고문 속에서 강요로 이루어진 거짓 증언이었음을 말하며 흐느낀다.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다. 국정원이 내놓은 명백한 증거는 동생의 증언 ‘자백’이었다. 여동생이 친오빠를 간첩으로 내몰고 유죄의 핵심증거가 여동생의 증언뿐이라는 점에 의심을 품은 언론인 ‘최승호’ 피디가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 등을 취재하며, 그것이 조작된 사건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은 급기야 증거까지 위조하고 검찰은 이를 이용하여 끝까지 간첩이라는 거짓 굴레를 씌우려고 하나 결국 증거가 위조됐음이 밝혀진다. 2015년 10월 대법원은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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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피디는 더 나아가 또 다른 국정원의 간첩조작 의심사례와 그 과정에서 생긴 피해자, 그리고 과거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그들에게 간첩조작사건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사건이다. 현재 국정원의 밀실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여전히 피해자들의 가슴에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답답함, 억울함을 새겨 넣는 사건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자백들이 얼마나 진실한 것들일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간첩조작사건뿐만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형사사건을 접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자백들, 국선 사건을 하면서 자백한 사건에 대하여 그동안 얼마나 가볍게 생각해왔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 자백을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죄 없는 사람이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변호사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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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사회가 여전히 정의롭지 못한 곳임을 새삼 실감하였다. 간첩을 조작하거나 이에 책임 있는 자들, 예컨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큰 삼촌, 아줌마, 대머리수사관, 김기춘, 원세훈, 위조문서를 그대로 제출한 이시원, 이문성 검사는 제대로 처벌 받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거나 그럴 뻔했던 자들이다. 한국사회가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곳이라면 이들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상관이 없다는 뻔뻔한 대답을 할 수 없어야 한다. 이러한 작금의 잘못된 상황을 바꿔야 하는 것 또한 민변 회원으로서의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싶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훌륭한 영화라는 사실을 진실로 자백하면서 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