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변호사들 다시 광장에 서다

2014-03-03

변호사들 다시 광장에 서다

 

글_좌세준 변호사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중략>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 최인훈 <광장> 1961년판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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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이 넘은 책의 서문을 길게 인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반세기를 격하여 우리들 앞에 ‘광장’을 다시 소환해낸 것은 무엇인가? 1960년 4월의 혁명을 목도하고 “민주주의는 인제 상식이 되었다”고,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던 시인 김수영은 불과 한 달 만에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라며 혁명의 죽음을 일갈했다. 정치적 자유와 시(詩)의 자유가 둘이 아님을 꿰뚫어보았던 그는 ‘상식’이 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위기가 임박한 1968년, 그 유명한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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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광장은 정치적 자유가 꽃피는 곳이요, 밀실은 개인의 자유가 숨 쉬는 곳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광장의 자유의 다른 이름은 ‘민주주의’요, 밀실의 자유의 다른 이름은 ‘인권’이다. ‘광장’의 자유와 ‘밀실’의 자유는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은 것이다. 최인훈과 김수영이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하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지난 2월 25일 박근혜 정권 1년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의 제목은 <박근혜 정권 1년, 민주주의도 인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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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지난 1년은 민주주의의 몰락과 인권의 후퇴가 발생한 한 해였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경찰의 수사방해,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청구는 ‘광장’을 폐쇄한 것이요, 스멀스멀 등장한 국가보안법과 ‘종북’이라는 망령이 접수한 것은 우리들의 가장 은밀한 영역인 안방, 그리고 당신의 노래하는 입과 생각하는 뇌다.

 

 

2월 25일 오후 민변 변호사들과 활동가 40여 명은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된 전단지 2,700여부를 들고 서울광장에 섰다. ‘국민파업’이라 명명된 이날 집회에 서울에서만 4만 여명, 전국에서 10만 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날 변호사들이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 선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상식’(common sense)을 말하려 함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상식이다. ‘상식’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라 되어 있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마저 갖추지 못했다면 ‘몰상식’이 되고 ‘비정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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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을 부정하는 ‘몰상식’과 ‘비정상’이 계속되는 한 희망은 없다. ‘정상’이 ‘비정상’으로 매도되고, ‘몰상식’이 ‘상식’처럼 포장되는 사회는 위험하다. 어쩌면 그런 사회는 우리가 지난 세월 맞서 싸워온 ‘독재정권’보다 더 위험할지 모른다. 지금 이 시대 우리들에게 더 많은 ‘광장’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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