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문]서해교전 사태 해결을 위한 300인 선언

2002-07-18

서해교전 사태 해결을 위한 300인 선언

1. 서해교전 사태와 민족의 위기

2002년 6월 29일에 발생한 서해교전 사태는 남과 북을 또 다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혼란에 빠뜨렸다. 남측의 해군장병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고 북측 또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전의 이른바 ‘연평해전’ 당시와 비교할 때 누가 누구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입혔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반복되는 민족의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우선 이번 서해교전 사태로 피해를 입은 젊은이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이번의 서해교전 사태는 한반도가 국지적 무력충돌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불안한 지역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어렵게 형성된 민족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 기운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분명히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사건이 어디까지나 국지적 분쟁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국지적 분쟁에 대한 합리적 대응체제를 갖추고 있을 때에만 그 재발방지는 물론 전면전으로의 비화 가능성도 능히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 사회 일부에서 보인 감정적이고 냉전주의적 대응은 사태의 본질에서 크게 빗나간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이번 사태를 남측만이 아닌 민족 전체의 관점에서, 전쟁이 아닌 평화의 관점에서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2. 서해사태해결을 위한 제안과 요구

-평화와 민족 전체의 입장에서

서해교전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한판 붙어보자’는 식의 감정적 대응으로부터 ‘화해협력정책의 지속’을 요구하는 의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일부 언론의 냉전적이고 선동적인 보도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확전불사’ 등의 발언에 위기의식마저 느낀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동해나 육상에서의 분쟁은 반복되지 않음에 비하여 서해에서의 분쟁이 3년 전 에 이어 또다시 발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서해교전 사태는 그 근본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내년에도 재발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욱 격렬한 형태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무력해결만을 주장한다면 다음 번의 위기와 그 피해는 이번보다 더욱 더 심각할 것이고 이는 다시 한번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에 몰아 넣을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남북 최고당국자와 남북 군사책임자들이 마주 앉아 대화를 통하여 서해교전 사태의 근원적 해결 방안을 마련할 것과 민족 전체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다.

(1) 남북당국자회담의 조속한 개최와 해상경계선 문제의 해결

서해교전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또한 상호 불신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하여 남북 당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회담을 즉시 개최하여야 한다.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도 남북 최고당국자는 만나야 하고, 현 사태에 즈음하여 군사당국자회담도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남북 당국은 공동으로 이번 사태의 진상과 원인을 정확히 조사해야 하며, 그 진상과 원인에 입각한 책임자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책임 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미 남북은 1992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남북기본합의서의 제2장 남북불가침 관련 부속합의서”를 채택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라고 합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당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을 확정하기 위한 협의를 하지 않은 채 10년의 세월을 허송했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남북 당국은 서해교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인 해상경계선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화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도 해상경계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꽃게잡이 문제 등으로 인한 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남북 당국은 해상경계선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어민들의 생존권 차원과 분쟁방지 차원에서 남북공동어로수역 설정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한 합의를 도출하여야 할 것이다.

(2) 화해 협력 정책의 지속

이번 서해교전 사태를 계기로 현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을 공격하는 일부의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사태임에 틀림없지만, 어디까지나 경계선이 확정되지 않은 수역에서, 꽃게잡이라는 어민들의 생존의 문제가 얽힌 상황에서 발생한 매우 특수하고도 복잡한 분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 당국이 대화를 통하여 충분히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전면적인 분쟁이 아니기 때문에 남측 정부의 화해협력정책 기조는 유지되어야 하며, 금강산 관광과 인도적 지원, 민간교류는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화해협력정책의 추진만이 서해라는 특수지역의 국지적인 분쟁 가능성 역시 낮출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남측뿐만 아니라 한반도 구성원의 하나인 북측에 대하여도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노력을 더욱 더 성실히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 남북 양측의 공동노력만이 이번과 같은 무력충돌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고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북측과 즉시 대화에 다시 나설 것을 촉구한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인 미국은 즉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북측과의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3)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자.

이번 서해교전 사태는 한반도가 ‘칼날 위의 평화’를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가 현시점에서 더욱이 우려하는 바는 흔히 ‘2003년 한반도 전쟁위기설’이다. 그 위기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미사일 협상, 핵 협상, 경수로 협상 등이 모두 2003년을 시한으로 삼고 있어서 어느 한 사안에서라도 북측과 미국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 이는 곧바로 한반도 전쟁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서해사태를 심각하게 보게 되는 것도 여기에 있으며, 이러한 사태 재발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남과 북의 공동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점에 있다. 만에 하나라도 남과 북의 국지적 분쟁이 한반도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강대국에게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비극이 될 것이다.

한반도는 다시 한번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는 남과 북 민족 구성원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우리가 월드컵 축제에서 보여주었던 그 놀라운 저력을 이번 서해사태를 평화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다면 이는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어낼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창조하는 위대한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2002년 7월 18일

민변 참여;

최병모, 김선수, 김인회, 김석연, 이유정, 강금실, 임종인,

김기중,이상호, 심재환, 김승교, 유효석, 이정호 변호사

이상, 총1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