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병원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규탄한다

2002-09-17

병원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규탄한다

2002년 9월 11일 새벽 6시경 정부는 28개 중대 3천여 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112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던 강남성모병원과 경희의료원에서 490여 명의 조합원들을 연행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파업이 진행된 경위나 장기화의 원인 그리고 대부분 여성인 조합원들이 평화적·합법적인 방법으로 쟁의를 해왔다는 점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노사간의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최소한의 대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 또한 연행 과정에서 경희의료원 여성조합원 2명이 실신하고 학생의 코뼈와 광대뼈가 부러지는 등 과도한 물리력이 행사된 것도 비난받아야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미 지난 6월 17일 성명을 통해 위 파업이 위헌적인 직권중재제도에 의해 촉발됨을 지적하면서 직권중재제도는 즉각 철폐되어야 하고 병원 사용자들은 위헌적인 직권중재제도를 근거로 노동조합을 탄압하지 말고 성실한 자세로 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하였고, 이후 사태가 악화되어 파업이 장기화되던 8월 6일 다시 한번 병원사용자들의 성실한 교섭과 정부와 법원의 공평한 태도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조화로운 중재자로 기능하기보다 사태 악화를 수수방관하다가 불의에 물리력을 행사하여 수백 명의 근로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이번 사태로 나아간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업은 헌법상 보장된 노동기본권의 실현이고, 나아가 산업평화와 사회의 안정과 공공복리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병원과 같은 필수적인 공익사업장이 파업에 돌입하면 정부는 노사자율에 의한 교섭을 촉구하고 조정하는 대신 위헌적인 직권중재와 물리력에 의존하였고, 이러한 잘못된 법 해석과 관행·직권중재의 남용 등은 결과적으로 사용자 측의 불성실 교섭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워 파업과 공권력의 투입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계층간의 적대감으로 이어져 왔다.

이번 병원 파업에서 사용자와 정부가 보인 모습은 이러한 악순환이 다시 한번 반복된 극명한 사례라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며, 특히 현 정부가 4년 8개월여 동안 일주일에 세 명 꼴로 828명의 노동자를 구속하는 등 유래없이 근로자들의 쟁의권을 짓밟아 온 연장선상에 있음을 생각할 때,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무엇보다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것’에 불과한 쟁의행위를 업무방해등의 혐의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노동운동을 불온한 것으로 탄압하던 시대나 군국주의 시기에만 행해졌다가 지금은 모두 사문화된 것이며, 단순한 근로제공 거부를 ‘위력’이라고 하여 사회적 규범 중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인 형벌로 벌한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 그것도 모자라 평화로운 쟁의가 진행되는 현장에 조합원 수 몇 배에 해당하는 무장 경찰들이 투입된다는 것은, 최소한의 상당성도 결하여 법률적으로 비례의 원칙에 맞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민변은 정부가 병원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이러한 위헌적·초법적인 공권력 투입이 현 정부의 억압적·반노동조합적인 태도의 반영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정부와 병원사용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를 촉구한다.

1. 정부는 연행된 노동조합원들을 즉각 석방하고 위헌적 직권중재 제도를 이유로 한 무리한 형사 절차 진행을 중단하여야 한다.

1. 정부는 이후에도 병원 노사가 자율적인 교섭을 통해 평화적으로 합리적인 결론에 달할 수 있도록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헌법이 정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충실히 보장해야 한다.

1. 병원사용자는 당장 성실한 태도로 교섭에 응하고, 노동조합 탄압을 위한 가압류·가처분이나 손해배상 소송들을 모두 취하하여야 한다.

1. 병원사용자는 이후에도 무리한 구조조정과 이윤추구로 의료의 공공성을 악화시켜서는 아니되며, 국민을 위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사가 협력, 노력해야 한다.


2002. 9. 1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