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국회의 테러방지법제정 움직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2002-02-23

국회의 테러방지법 제정 움직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한권력을 휘두르면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대표적 악법으로 지목되어 온 테러방지법이 또다시 입법추진되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하며 국회의 테러방지법 제정 기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해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빚어진 도발적인 전쟁 분위기에 편승하여 테러방지법의 입법을 주도하다가 인권·시민단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반발에 부딪혀 테러방지법의 입법을 중단한 바 있다. 이후로도 대한변호사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각계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다.

그런데, 또다시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간 총무회담 합의를 통하여 다시금 2월 20일(수)부터 22일(금)까지 국회 정보위를 통해 테러방지법 제정을 논의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테러방지법안은 “정치적·종교적·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 목적이나 주의, 주장을 알리기 위하여 행하는 거의 모든 유형의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의적인 법해석과 집행이 가능한 법조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계엄상태에 준하는 군대의 동원이 가능하고, 국가정보원의 수사권을 절대적으로 강화하여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침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악법임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테러방지법을 ‘국가보안법을 능가하는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지칭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에 대해서 깊은 애도를 표하며, 평화를 위협하는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극도로 제한하고 정보기관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위임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위험하고 불순한 기도에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이러한 기도는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숱한 희생과 투쟁을 통하여 지켜온 민주주의, 인권, 자유라는 최고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테러의 방지는 국민의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대의 악법이라 불리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있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의 정치·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더욱 더 후퇴시킬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럼에도 정부여당과 야당 역시 이러한 테러방지법이 국민들의 인권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전세계에 조성한 전쟁의 분위기 속에서 졸속적인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역시 군부독재시대에나 누리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잊지 못하고, 테러방지법에서 자신들의 수사권을 강화하는 등 현재의 테러정국에 편승한 불순한 권력집중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수지김사건의 조작에서 드러나듯이 ‘권력의 무한집중’은 ‘인권의 무한침해’를 낳을 뿐이라는 생생한 교훈을 잊을 수는 없다.

우리는 평상적인 법제도만으로도 테러에 대비할 수 있는 법제는 충분히 정비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군사독재의 유산으로 그동안 정보와 권력의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국가정보원이 군사권을 비롯한 무한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시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사회에서 요구되는 진정한 테러방지책은 국민의 인권과 자유라는 기초 위에 국민의 광범한 지지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민주적이고 건강한 정부와 사회를 만드는 것임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국회가 테러방지법 제정을 위한 일체의 논의와 심의를 즉각 중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2002. 2. 2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송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