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법안을 즉각 철회하라

2006-03-02

민변,민주법연,노노모 기자회견 진행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27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으며,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표결 처리하겠다고 하고 있다.
우리 3개 법률가 단체는 이러한 법안 통과 일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즉각 이를 철회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그 사용의 남용을 근절하며 실질적으로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 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1. ‘비정규 관련 법안’의 날치기 통과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위 법안의 통과가, 지난 2월 22일 야당 원내대표가 차기 임시국회로 미루기로 합의한 지 단 닷새 만에, 열린 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밀실에서 야합하여 사상 유례가 없는 상임위원회 질서 유지권을 발동하여 반대하는 위원들을 끌어내고 강행되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그 동안 전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고, 향후 우리 사회의 고용시장과 대다수 노동자들의 지위를 좌우하게 될 법안을, 이렇게 ‘날치기’로 통과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게다가 민주노총에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되고, 정부와의 대화,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더 이상의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2.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안은 사유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기간제(계약직)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간제 고용을 법제화하였다. 이제 사용자는 얼마든지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도 없게 된다. 소수를 제외하고 모든 임금 노동자가 단기간 계약을 반복하면서 직장을 옮겨 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며, 이러한 고용 불안과 그로 인한 사회 문제(장래 소득에 대한 예측이 불안정해져 생기는 소비위축 포함)는 장기적으로는 노동자 개개인 뿐 아니라 산업과 국민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법안은 “2년의 기간 제한”을 도입하고 있으나, 이는 2년 단위 갱신 거부의 반복을 의미할 뿐이고, 오히려 법적 기간 제한 때문에 그 동안 반복 갱신되었던 곳에서 2년이 되기 전에 기간 만료를 이유로 갱신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미 노동현장에서는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하는 경우 정규직 고용이 부담”이라며 2년 이상 근속한 기간제 노동자들 계약의 갱신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기간 제한 자체도 적용되지 않는 예외사유가 6가지나 열거되어 있고 대통령령으로 얼마든지 예외를 둘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2년의 기간 제한만 피하면 되기 때문에 기간제로 2년을 사용한 후, 다시 파견직으로 2년을 사용하고, 그 다음에 다시 2년 동안 기간제로 사용하는 등 변칙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까지는 법원이, 기간을 정하여 채용된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그 기간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고, 그 경우에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라고 하기도 하고(대법원 1994. 1. 11. 선고 93다17843 판결), 고용이 계절적․임시적인 것이 아니고 상당기간 반복 갱신되어 계속적인 고용이 기대되고 있는 때에는 해고 제한의 법리가 유추적용되어 경제사정의 변동에 의한 잉여인력의 발생등과 같은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3. 11. 28. 선고 2003두9336 판결, 서울행정법원 2004. 4. 8. 선고 2003구합32275 판결 등)고 하면서 기간제 고용의 남용을 규제해 왔고 기업들도 이러한 법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 법의 내용대로 2년 기간 내에 아무런 제한 없는 고용을 합법화 하면 위와 같은 최소한의 제한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3. 이 법안의 두 번째 문제는 파견대상업무를 사실상 전면 확대하고, 불법파견을 막기 위한 도구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법안은 우선 객관적인 사유가 아니라 ‘업무의 성질 등’이라는 매우 주관적이고 포괄적인 사유를 추가하여 대통령령으로 얼마든지 파견허용업무로 할 수 있도록 개정함으로써, 사실상 노동부에 파견허용업무 결정권을 주었다. 이는 개정 논의에서 계속해서 요구했던 서비스업을 포함하는 넓은 범위로 파견 대상 업무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파견이 일상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중간착취와 노동기본권을 박탈해온 파견노동을 전면 허용함으로써 파견노동의 증가와 노동조합의 약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또한 불법 파견을 방지하는 것이 법 개정의 가장 큰 취지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 제6조의 2는 고용의제 대신 불법 파견시 고용의무만을 지우고 있다. 즉 파견법에 어긋나는 파견노동자 사용을 한 경우에도 직접고용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는 의무만을 부과하고, 그 불이익은 최고 과태료 3천 만 원에 불과하게 한 것이다. 이로써 종래 2년의 파견기간 제한을 도과한 경우 ‘직접 고용으로 의제’되었던 효력은 이 법에서 더 약화되는 방향으로 ‘개악’ 되었고, 사용사업주는 불법파견한 것이 발견되는 경우에도 ‘직접 고용 의무’라는 공법상의 의무를 지게 되어 이를 위반할 시에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사법상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사용사업주가 과태료를 내는 대신 직접 고용은 하지 않겠다고 하면 감독관청은 물론 해당 노동자로서도 이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이 없게 되는데, 이렇게 과태료라는 행정 벌만으로는 불법파견을 금지하는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애초 정부에서 ‘직접 고용 의무’를 부과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고용 의제만으로는 과태료 부과 등의 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나, 여러 번 지적한 바와 같이, 고용의제 규정과 함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법률적으로 직접 고용이 의제된다고 해도 이를 사실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것(사용사업주 소속 노동자로 적을 옮기고 임금을 직접 지급하며, 사회 보험 등의 가입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에 대하여 시정명령을 하고, 이를 불이행하는 것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불법파견을 철저하게 규제하면서 동시에 과태료 부과를 위해서 직접 고용 의제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며, 직접 고용이 의제되어야만 불법파견 금지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4. 비정규직의 사용은 대폭 확대하면서 남용을 규제한다며 도입한 차별시정 대책은 오히려 차별을 용인하고 실효성 없는 시정절차를 담고 있을 뿐이다.

이 법안은 비정규직 사용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를 포기하였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효성이 없는 시정 절차만을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는 차별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제를 받지 않으며, 확정된 시행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만 과태료 처분을 받기 때문에, 일단 차별을 하고 추후 소송여부에 따라 이행 여부를 결정하기만 하면 되므로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당노동행위 인정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노동위원회 현실을 고려할 때 노동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이라는 것도 현실에 존재하는 비정규직 차별을 합리적인 차별이라고 용인해주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든 뻔한 일이다.

5. 결국 이 법안은 비정규직 보호가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 노동자의 56%를 초과하고, 그 중에서 98.0%(823만 명)는 임시․일용직 또는 기간제 노동자로서 그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비정규직 고용은, ‘고용의 유연화’를 넘어서 고용의 양극화를 불렀고, 결국 전체 임금 노동자의 70%가 평균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고 있다고 하는 놀라운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법제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고 하기 위해서는, 고용보호의 관점에서 이러한 비정규직 고용이 예외적인 것임을 확인하고, 이러한 고용형태를 남용하여 불안정한 지위와 열악한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탈법적 관행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 법안은 2년 기간 범위 내의 무제한적인 기간제 사용을 보장하고 파견대상 업무의 확대, 불법파견의 방치, 무력한 차별시정 제도 등을 통해 비정규직의 ‘보호’하기는커녕 ‘양산’을 방치․조장하고 있다.

고용안정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한 이 때,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을 조장하는 이 법안이, 그것도 사회적 대화와 타협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점에 날치기로 통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가치판단과 보상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의회의 기본적인 의무이며, 정부나 기업이 노동유연화와 인건비절감을 통한 경쟁이란 주술에 빠져있는 한 비정규직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

1. 정부와 국회는 날치기로 통과된 비정규 법안을 즉각 철회하라.

2.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기간제 고용과 불법 파견의 무분별한 남용을 막기 위한 실질적 보호 입법을 마련하라.

3.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불평등구조의 개선을 위한 정책 전환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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