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인간존엄의 가치를 수호하라

2005년 6월 3일 minbyun 150

“헌법재판소의 열손가락지문날인 합헌 결정을 비판한다”

2005. 5. 26.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현행 주민등록법에 근거한 열손가락지문날인 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헌재는 주민등록법에 근거한 지문날인제도의 입법 목적에는 행정적 효율 외에,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치안유지와 국가안보를 위한 목적이 고려되었다는 전제 하에, 주민등록법 제17조의 2 제2항(이는 주민등록증에 수록되는 정보를 규정한 내용이다)에 “지문”이라고만 하였지 “오른쪽 엄지손가락 지문”이라고 특정한 바가 없다는 이유로 열손가락지문제도는 법률상의 명시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그 열손가락지문정보를 경찰청이 수집, 처리, 보관할 수 있는 것은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이하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여 법률적 근거를 부여받는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17세 이상 모든 국민이 열손가락지문을 날인하고, 그 지문정보를 경찰청이 통합 수집, 처리, 보관하는 행위는 다른 신원확인 방법에 비교할 바 없이 정확하고 효율적인 제도이므로 이는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헌재의 이와 같은 결정은 물론이거니와, 헌재가 그 결정의 이유로 설시한 근거들에 대하여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온 국민이 범죄자처럼 열손가락 지문을 날인하여야 하는 그 심대한 기본권의 침해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주민등록법 본문에서도 아닌 시행령 저 뒤쪽 별첨 30호 서식란에서야 발견되고 있는 바, 그것이 헌법이 요구하는 기본권 제한의 명시적인 법률적 근거라는 논법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열손가락지문날인제도의 근거라고 하는 주민등록법에는 경찰청의 열손가락지문의 수집, 보관, 이용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에 의한 개인정보의 보호가 그 입법목적임이 제1조에 명시되어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오히려 그러한 위헌적 행위의 근거가 된다는 그 기발한 논리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주민등록법의 목적이 사실은 제1조에 명시된 바와 같은 ‘주민생활의 편익증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안유지와 국가안보에 있는 것이고, 개인정보보호법이 경찰청의 지문 정보 수집, 이용의 근거가 된다는 해석을 다른 기관도 아닌, 법률의 진정한 입법목적이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헌재에서 공식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고 실망스럽다.

이 모든 법기술적인 논의들을 뒤로 하고라도, 우리는 열손가락지문날인제도가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는 헌재의 판단에, 그리고 그러한 판단의 주요 근거로서 제시된 것이 국가안보와 효율성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우려한다.  
온 국민의 지문을 국가가 총체적으로 수집,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심대한 위헌적 요소를 가지고 세계적인 프라이버시 보호의 추세와도 한참은 뒤떨어진 것이다.
하물며, 모든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 날인을 강제하고 이를 경찰청이 통합, 전산화하여 이용하는, 문명 국가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이 제도는 그 법률적 근거를 어느 법조문에서 찾아내든 그 자체로 국민의 개인정보결정권을 과잉으로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헌재는 체제대립이 상존하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의 신원확인을 완벽히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는 열손가락지문날인제도만큼 효율적인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너무도 간단히 이 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가치에 관하여 어느 기관보다도 민감해야 할 헌재가 이 문제에 대하여 보여주는 그 놀라울 정도의 둔감성에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언제나 효율과 편의, 치안유지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헌법소원 청구인들이나 우리가 헌재에 기대한 것은 법률의 기교적 해석이나 무가치적인 형식논리의 기발함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온 국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세계에 유래없는 이 비문명적 제도가 과연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여전히 유지되어도 좋은 것이냐는, 보다 본질적인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가치 –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하여 헌재는 사실상 “효율적이므로 합헌이다”라는 대답 아닌 대답, 경찰청은 할 수 있을지 모르되 헌재가 하여서는 아니되는 그러한 종류의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궁극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이다. 헌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이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이다. 행정권력이, 정치권력이 또는 경제권력이 국가안보와 유용성과 효율의 이름으로 이 가치를 침해하고자 할 때에 이 가치를 의연히 지켜내는 것이 헌재의 존재이유이다.
우리는 이번 헌재의 결정이 과연 이러한 헌재의 존재이유에 충실한 결정이었는지 묻고 싶다. 민주주의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대체로 효율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자신의 존재이유와 헌법적 가치에 보다 민감한 헌재의 모습을 보고 싶다. 열손가락지문날인을 강요당하는 17세 고등학생이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곳으로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국가기관, 그런 헌재를 기대한다.

2005. 6. 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이 석 태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