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전체교육 ‘한가람 변호사님의 성소수자 인권 특강’ 후기-오로라 인턴

2013년 5월 16일 minbyun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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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오로라 여성위원회 자원활동가

소위 진보적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교양이 된 듯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이나 공감이 없더라도 ‘나는 편견은 없다’는 태도를 취하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학습된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더라도 그것을 드러내는 일은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누구를 위해서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 자리에는 성소수자가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와는 다른, 어딘가에 존재한다고들 하는 사람” 이라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성애를 인정해” 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주위엔 없겠지만, 어딘가에서 나타나면 받아들여주겠다는 식이지요. 이곳에는 성소수자가 없다는 암묵적 합의는 ‘나는 너를 정상이라고 생각해’ 라는 일종의 편협한 존중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진정 성소수자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넘어 사고할 수 있다면 그러한 존중, 암묵적 합의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사람이 사람에게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비정상적이지만, 너희를 관용할게’ 라는 시혜적 태도가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 이라는 연대의 태도. 이를 위해서는 성소수자에게 덧씌워진 편견과 낙인을 직시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가람 변호사님은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있다면, 사랑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한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지 않고자 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성애자에게 동성을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자에게 이성을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이해란 비정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여기며 공감하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또한 그가 하는 사랑이 내가 하는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소수자를 “문제”로 만드는 것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성소수자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덧씌운 관념입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일은 성소수자에 들러붙은 낙인, 은유, 이미지와의 투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폭력입니다.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와 그들에게 덧씌워진 낙인과 은유를 분리해서 바라보고,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무너뜨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던 독일 베를린에서는 매년 6월 큰 게이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이날 베를린의 가장 큰 중심가인 Unter den Linden의 도로는 봉쇄되고, 버스도 운행하지 않습니다. 거리 행진이 열리기 때문에 시에서 협조하는 것이지요. 국회의사당 앞에는 게이 페스티벌을 후원하는 각 정당들의 행사 트럭이 줄지어 서 있고, 클럽 음악을 틀고 풍선을 날리며 사람들은 함께 춤을 춥니다. 국회의사당 앞의 말쑥한 거리는 꽃가루와 폭죽 등으로 완전히 망가집니다. 성소수자의 축제를 위해 도시의 중심가를 봉쇄하고 국회의사당 앞 공간을 기꺼이 내주는 나라. 지켜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이 페스티벌을 위해 명동 거리를 봉쇄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공간을 내주고 심지어 각 정당들이 후원한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당연히’ 매년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지점을 향해 행동하며 살아간다면, 언젠가 많은 ‘당연히 그렇지 못한’ 것들이 ‘당연히 그러한’ 것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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