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불온서적 지정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로 파면 당한 前군법무관, 박지웅 회원

2010-07-15


지난 5-6월호「민주사회를위한변론(민변이 발행하는 격월간지)」에는
<불온한 판결, 시대의 역주행>이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바로 ‘군법무관 파면 취소’ 기각 판결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요.
이번 25호 뉴스레터에서는 그 판결의 당사자인 前군법무관 박지웅 회원을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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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웅 회원님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는 이유로 파면 당한 군법무관’이시라는 겁니다. 헌법소원을 제기하신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2008년 8월에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는데, 아무래도 직업이 법률가이다 보니 소송으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전에 지켜야할 내부절차들을 거쳤는데, 이야기를 해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조직 내부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사실 불가능해요. 그럴 때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 중 하나가 ‘헌법소원’입니다.
 군법무관이라는 게, ‘헌법질서’를 지키라고 있는 것이잖아요. 불온서적 지정이라는 것은 굉장히 권리침해적인 것이기에, 실효성이 얼마나 있든 간에 상징적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에서 예민하게 반응할 거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다들 조심해서 대응을 하되 하기는 하자는 의견이 다수였어요. 실제로 시간이 더 있었다면 참가했을 사람도 더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군법무관들이 나선 이유는, 병사들이나 일반 장교들은 신분보장이 안 되니, 어차피 변호사 할 사람들인 군법무관들이 구애받지 말고 하자고 이야기가 된 겁니다.


– 파면을 받기까지의 경과는 어떻게 되나요?

 10월 이후, 군의 감찰(민간의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국방부는 저희가 군을 흔들어놨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소송을 냈지, 죄를 지은 게 아닌데, ‘조사’를 받는다는 건 형식이 좀 이상했지만, ‘항의’가 목적인 것처럼 비치는 건 좋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간단히 조사를 받았습니다. 군에서도 징계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지, 다섯 달 정도를 미루다가 징계를 내렸습니다. 7명의 군법무관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저를 비롯해 두 명이 파면을 당하고, 나머지 분들은 감봉과 같은 경징계 처분을 받았어요. 공안사건의 상 수괴, 모집책, 행동책의 개념을 적용한 것 같습니다.(웃음) 소송제기 행위가 잘못된 거라면 누가 주동했느냐 아니냐가 불법성의 차이를 가져오진 않을 텐데, 똑같이 소송을 낸 사람들이 다른 징계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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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법무관이 파면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파면이 취소가 되면, 파면되어 군에서 나와 있던 기간이 산입되면서 그동안 밀린 월급을 받고 남은 병역기간을 복무하게 됩니다. 취소가 안 되면, 불명예제대가 되고 병역의무는 완료되는 거예요. 
 변호사 자격은 유지가 되는데, 파면일로부터 5년간 변호사 영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취소를 받아야죠.


– 얼마 전, 파면 취소 신청이 기각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나가실 것인지를 말씀해주세요.

 파면 취소 기각결정에 대한 항소심 준비서면을 최근에 냈습니다. 상대방이 반박 준비서면으로 답변을 하면 9월 정도에 변론기일이 잡힐 거고, 10~11월 정도면 아마 결론이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군법무관들과는 소송 준비 때문에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고, 취소를 받아야 하는데,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직자의 파면이라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뇌물, 축첩, 형사처분과 같이 중대한 사유에 의해서만 가능한 건데, 함부로 파면을 시킨 사람들에 대한 응징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두 번 다시 이런 희생자를 만들지 않도록 선례를 남겨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고액의 위자료 청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자료를 청구하여 승소할 경우에는 그 돈을 절 도와주신 인권사회단체들에 기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의 위헌성 중, 특별히 초점을 맞추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사상의 자유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실 사상의 자유보다는 ‘알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23권의 책을 면면히 보면 ‘어떻게 이런 책들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할 생각을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들이 의식화의 교재로 사용하는 책들이 많아요. 병영도서관에서도 그 책들을 누군가는 한 번씩 볼 텐데, 책을 접함으로서 정확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인생관 같은 것들이 정립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책들을 접하지 못하는 병사들이나 장교들은, 계속 군에서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만을 가지고 인생을 살겠죠.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 그런 게 중요하고, 그런 게 ‘알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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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법무관 파면 사건과 관련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혼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보면 어떨까 싶어 한겨레 문화센터 다큐멘터리 촬영반에 등록을 해서 다녔어요. 거기서 처녀작을 내라고 하는데, 내 사건을 내 스스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희극 속의 비극, 비극 속의 희극’을 좋아해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물려서 풀리지 않는 느낌의 영상물을 좋아합니다.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불온서적’이라는 게 등장했다는 건, 희극이잖아요. 옛날 기준으로 이야기하더라도 전혀 금서가 아닌 것들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실소를 보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이면에 깔려있는 것들을 보십시오. 국방부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친북, 좌파, 반미, 반자본주의, 이런 것들은 군의 장병들에게 안 좋기 때문에 우리가 통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2년 동안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사상통제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인식 자체가, 얼마나 비극적인 건가요. 그런 비극 속의 희극, 이런 것이 얼마나 웃기는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한 번 드러내보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는, 참여연대 사람들과  민변 분들이 많은 도움이 되어주셨습니다.


– 왜 ‘다큐멘터리’인가요?

 다큐멘터리는 ‘영상’이지만 픽셔널 필름과는 달리, 사람들에게 사실적인 것들을 강하게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행동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면서 재밌어 하고 웃지만, 그 속에 있는 어떤 비극이나 문제점을 보게 되는 거잖아요.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효과가 크면서 저비용 고효율 구조라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 다큐멘터리와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은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불온서적이 어떻게 지정이 되었는지 그 경위를 찾아가보았는데, 굉장히 우스운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이화여대에서 한 번 상영을 했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실소를 보내며 재밌어했어요. 작품은 보완을 좀 해야 하고요. 영상의 미학적 측면, 그리고 구성면에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항소심 끝나면 본격적으로 한 번 해볼까 생각중이고, 인권단체에서 연락이 오면 무상으로 나눠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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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한홍구 교수님이 하시던 <군대와 사회>라는 강의를 물려받아서 했습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군사주의에 상당히 지배받고 있는 사회인데, 민간이 군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국방부 장관이 민간인이니까 민간이 군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질적으로는 군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죠. ‘천안함 사태’만 봐도 그렇습니다. 민간인들 입장에서는 군에 대한 접근을 하기가 전혀 쉽지가 않으니까, 유명한 전문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이 목소리에 힘을 못 내고 가장 핵심적인 정보에 접근을 못하고 있잖아요. 어뢰를 맞았든 좌초가 됐든, 민간 전문가가 들어가서 문제가 어떤 데에 있는 건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면 아마 이 정도까진 가지 않았을 겁니다. 군의 비밀주의, 그리고 군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흐름, 이런 것들은 자유주의의 군대에는 맞지 않는 거고, 이런 문제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가르치는 직업이, 잘 맞으시는 것 같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강의라는 것은 계속 느는 거지, 잘 맞다 안 맞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재미는 있습니다. (웃음)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군대와 우리 사회는 교호적인 면이 굉장히 큰데, 우리가 군대에서 주입되는 일방적인 이데올로기만을 사회에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 사회가 군대라는 문제를 일방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부분들은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에피소드라면, 군에서 불온서적 경험을 했다는 한 학생이 기억납니다. 리포트를 써내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당시 자기도 언론에 알린다거나 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를 못 냈는데, 누군가가 외부에 알리고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내니까, 그것이 굉장히 고마웠다고 한 친구가 수강생 중에 있었습니다. 그때 참 기분이 좋았어요.



– 요즘 세태가, 다소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청년들을 양성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세대에 속해계시면서도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으신 것이 조금은 신기한데요.

 IMF 사태 이후의 사회변화의 영향이 크죠. 사람들이 사회문제보다는, 일단 어떻게 먹고 살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기보다는 소극적으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지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책도 읽고 토론하며 고민하는 등 사회운동에 대한 마인드는 늘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어떤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행동에 대한 고민은 군에서 겪었던 사건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에요. 사회가 정치권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헌법적인 질서까지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 정도까지는 타협이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행동에 나서게 된 거죠.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구나, 내가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제가 먹고 사는 일과 운동이라는 것을 조화시키고 변호사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학교에 있는 분들에겐 ‘행동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참여연대라든지 민변이라든지, 아니면 정당 활동이라도, 무엇이든 활동을 좀 하다보면,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어떤 삶을 살 것이고 어떤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군대 말투가 몸에 배어있으신 것 같은데, 군에서 나오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

 아, 제가 군대말투를 쓰나요? 아직 전역한지 1년 반이 안 되었습니다.
군복무는 1년 정도밖에 못 했지만, 제가 모범군인이었기 때문에. (웃음)
빨리 군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 글 / 출판홍보팀 김란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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